• 인류의 공업(共業)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22 / 조회 : 9914
  • 첨부파일 :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큰제목)

인류의 공업(共業)

 

(작은제목)

현대과학의 총제, 핵무기시공 초월한 파괴력

인간사회 윤리성으로 업장 녹이는 지혜 찾을 때

 

(본문)

인류의 미래에 중대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현실적인 요소 중 하나는 핵무기라고 한다. ‘단 한방에 전 인류문명을 파괴할 수 있는가공할 괴물로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우리나라는 전례 없는 위기국면으로 몰아지고 있다. 핵무기가 너무도 위험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다며 지구 전체가 시끌시끌하다. 한반도 전쟁을 우려하는 전 세계지도층의 발언도 이어졌다.

흔히들 핵폭탄을 발명한사람은 아인슈타인으로 알려져 왔는데, 아인슈타인은 그의 이론만 이용된 것이지 실제 핵무기 개발자는 미국이 주도한 원자폭탄 개발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이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이다. 그래서 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2차 대전 중이던 당시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독일의 원자폭탄 제조 가능성 앞에서 하나로 뭉쳤다.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손에 넣는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야 하겠기에, 그래서 독일 보다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상 첫 핵무기 개발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1944년 후반부터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자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미국 첩보대가 독일에 잠입해 입수한 비밀문건을 확인한 결과, 나치가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으며, 19455월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맨해튼 프로젝트 역시 폭탄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때 과학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독일이 원폭을 만들지 못한 상황에 폭탄제조를 계속해야 하는가, 이로 인해 어떤 재앙이 닥칠지 알 수가 없다는 우려가 깊었으며 그 폭탄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당시 원자폭탄은 이미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 영역으로 넘어가 있었다. 소련을 앞질러야겠다는 경쟁심, 미국의 막강한 힘을 과시함으로써 최강의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욕심이 작용했다. 트루먼 당시 미국대통령은 19457월 최초의 핵실험을 명령했고, 마침내 8월 인류 최초의 원폭투하를 결정했다. 86일 히로시마 폭격, 그리고 사흘 후 나가사키 폭격으로 115천명이 즉사하고 1950년 집계 할 당시까지 총 34만 명이 사망했다.

20세기 핵개발 경쟁은 엉뚱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2차 세계대전후 신탁통치하게 된 미국이 핵 실험장으로 이용했던 마셜제도공화국이다. 주민들을 강제이주 시키고 1946년부터 12년 간 핵실험을 했다. 그 땅이 온전할 리가 없다. 주민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고, 무시무시한 기형아가 태어났으며 바다에는 기형의 물고기들이 나타났다. 7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비키니 환초에는 사람이 살 수가 없다.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비키니 환초는 말 그대로 재앙의 땅이 되었다.

핵이 무서운 것은 피해가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은 어느 한 사람의 독창적 발명품이 아니라 현대과학의 총체였던 것이다. 인류의 또 다른 공업(共業)이다. 업은 자연법칙적인 인과만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윤리성에 직결된다. 업을 녹이고 소멸하는 지혜를 찾을 때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