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 살아가는 '마음의 습관' 위에 공동체 정립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5-11 / 조회 : 1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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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함께 살아가는 '마음의 습관' 위에 공동체 정립

 

(중간제목)

새해 밤하늘의 별빛에서 '우주 속의 나'를 보길

소통·대화·공감 …‘화쟁사상’으로 진영논리 극복

 

 

(본문)

2020 경자년 ‘의미’와 ‘소망’

 2020년 경자년(庚子年)의 태양이 떠올랐다.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 세밑과 새해로 분별한다. 우리네 삶에 ‘의미’와 ‘소망’의 무늬를 입히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맘때면 모두 ‘희망찬 새해’를 입에 올리게 되지만 그 어느 해보다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 대한 어려움과 걱정스러움으로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도 우리는 2019년을 잘 견뎌냈고 2020년 새해를 희망으로 열어야 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인간의 삶과 역사는 난장(亂場)이었다. 모든 현실은 난장판을 뚫고 가면서 의미를 새겨나간 고군분투(孤軍奮鬪)의 순간이다. 어두운 시대의 초상은 결코 어둡게 묘사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전망도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폐허에서 나라를 세웠고 70년 전 국가 멸절 직전의 6·25전쟁에서도 살아남은 국민이다. 열정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을 일구고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한국의 기적'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던 한국인의 피와 땀이 오늘의 성취를 추동했기 때문이다.

‘우주 속의 나’

 새로운 한 해의 시작, 밤하늘의 별빛에서 '우주 속의 나'를 보는 건 절망을 딛고 희망을 확인하는 일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작디작은 인간이 만나는 체험이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아니라 현대 과학이 뒷받침하는 실존 경험이다. 인간은 잠깐이나마 아수라(阿修羅) 같은 현실을 넘어선 성찰의 순간을 가져야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주 대부분은 불가해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정말로 놀라운 건 인간 ‘나’의 탄생이다. 이 태양계에서 ‘내’가 태어날 가능성은 너무도 희박해서 ‘0’에 가깝다고 한다. 나아가 인간은 '이 우주가 왜 있는가?'를 묻는다. 인간의 마음이 우주와 일대일(1:1)로 만나는 경이로운 순간이다.

자기성찰과 공감능력

 생각하는 인공지능(AI)이 등장하고 알파고를 목격한 현대 사회에서는 미래에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리라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서 살피면, 인간만이 지닌 자기성찰과 공감 능력까지 갖춘 물질 로봇의 출현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지능의 주요 기능인 연산 능력과 추론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계산 능력으로 환원할 수가 없다. 인간은 삶과 우주의 의미에 대해 궁극적 질문을 던지고, 이웃의 고통을 공감하며 연민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그 존엄성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원적 개방적 세계

 2020 경자년 새해는 함께 살아가는 '마음의 습관' 위에 공동체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한 해 보수와 진보, 좌 와 우의 진영 간 적대와 증오 앞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마음자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진영논리 속에서 자신과 다른 견해에 대해 증오와 혐오로 대결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제 '갈등극복'과 '사회통합'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풀어야할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상대방의 옳음’과 공존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정의를 대면할 수 있는 지혜의 방안으로 원효스님의 ‘화쟁(和諍)사상’을 일깨우고 싶다. 화쟁사상 속의 대화의 정신은 서로 다른 주장들이 결코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단 하나의 옳음이 아니라 복수의 옳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옳음’이 절대적일 수 없으며 ‘저들의 옳음’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큰 옳음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순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갈등을 ‘건설적 전환의 계기’로 삼고자하는 것이다. 논쟁이 나의 옳음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대화는 상대방의 옳음을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극복과 사회통합

 따라서 화쟁의 정신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이분법적 세계를 지양하고, 다원적·개방적 세계를 지향한다. 타인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는 것, 대화를 위해 ‘나의 옳음’을 잠시 유보하고 ‘타인의 옳음’에 대해 숙고하는 것으로 다툼이 없는 평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투되 평화롭게 다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는 말처럼 사람마다 생각과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하려면 다른 생각과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세상에는 흑색이나 백색만 있지 않고 형형색색이 존재한다. 세상의 형형색색을 흑백으로만 판단할 때 화를 부르고 공동체는 불행해진다. 세상의 것은 모두 상대적이며 시시각각 변한다.

 진정한 행복은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로 평안하게 사는 데 깃든다. 새해에는 우리 국민이 모두 화쟁정신으로 공존하고 소통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 혹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다 따뜻하고 안전한 새해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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