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유 - 청101-1면 무공저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1-02-28 / 조회 : 5919
  • 첨부파일 :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청101-1면 무공저


무소유


차별 대립 모습 초월한 ‘무차별’ 상태

본래 無一物.…모든 사물, 空․무상․청정


 옛날 돈만 아는 어느 부자 노랭이 영감이 있었다. 그 노인은 어찌나 인색했는지 반찬도 없이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조기를 사다가 먹게 되었는데 모처럼 생선 맛을 보니 밥과 생선이 금방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그 조기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쳐다만 보고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러나 밥 한번 먹고 천장의 조기 한번 쳐다보고 또 밥 한번 먹고 천장의 조기 한번 쳐다보려니 귀찮았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자기가 밥을 먹을 때마다 “조기” 하라고 했다. “조기” 하는 소리를 반찬삼아 밥을 먹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며느리도 시아버지가 밥을 먹을 때마다 “조기”하기가 귀찮아서 “조기 조기” 하고 다음 먹을 것까지 연거푸 말해 버렸다. 그러자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아이구 야야 짜다” 하고 말했다. 그렇게 돈만 아는 노인이 죽으면서 유언을 했다. 자기가 죽으면 관 양쪽에 구멍을 뚫어 양팔을 내놓고 상여를 내가라고. 상여가 나가는 날 노랭이 영감의 죽은 손이 관 양쪽에서 흔들거리며 공동묘지를 향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뜻을 몰라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그 뜻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한 스님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사람은 누구나 빈손 쥐고 나온 아름다운 모습처럼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비유한 이야기이다. 

 존재라는 것은 육안으로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식이 아닌 ‘지혜의 눈’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실체가 없는 물질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일체의 가정적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제행무상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무상은 공(空)의 사상을 근본으로 한다. 모든 사물은 공이고 무상이다. 무상이기 때문에 청정하게 되고 차별 대립의 모습을 초월한 무차별의 상태를 말한다. 무상하기 때문에 지위나 명예에 집착하는 탐욕을 버리고 오늘 하루의 소중한 생명을 방일함 없이 정진 노력하려는 정신적인 다짐이 생기게 된다.

 ‘무소유’를 집필해서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무소유의 삶을 일깨운 법정스님이 최근 입적했다. 스님은 불필요한 것을 갖게 되면 처음의 그 순전한 마음에 욕심이 들어오게 되고 그 순간 탐욕으로 바뀌고 마는 속성에 경종을 울렸다. 모래를 손안에 넣고 꼭 쥐면 쥘수록 남는 것 없이 빠져 나가듯이 소유에 대한 집착과 아집은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는 ‘본래 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불교 진리를 크게 대중화 시켰다. 일찍이 육조 혜능스님은, “본래가 한 물건도 없다. 마음이니 몸이니 나누어 몸과 마음을 따로 얘기하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하지만, 어디에 마음이 따로 있어 닦고 말고 할 것이 따로 있겠는가”라고 가르쳤다. 또한 임제스님은, “구름 흐르나 하늘은 움직이지 않네. 배는 다녀도 언덕은 옮겨가지 않네. 본래 무일물 아무것도 없으니 어디에 기쁨과 슬픔이 있으랴”라고 할(喝)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