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보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4-18 / 조회 : 1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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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인류의 보물

 

(중간제목)

풍족하고 평화로운 시기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할머니의 지혜’는 빛이나

 

(본문)

 진화생물학과 문화인류학에는 ‘할머니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는 번식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여성들은 폐경 후에도 상당 기간을 심신 건강한 상태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며 산다. 그것은 할머니들에게 종(種)의 번식을 위한 역할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게 ‘할머니 가설’이다. 여성이 나이 들면 자손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손주들을 돌보고 거둠으로써 간접적으로 후손의 생존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런 역할이 번식에 도움이 되니 생식기능이 끝난 후에도 오래 살도록, 인간이 장수하도록 진화했다는 설이다.

 ‘가설’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후손을 돌보는 구석기시대 할머니들의 시선이 어떠했을 지는 짐작 가능하다. 젊은 시절 경험 없이 자식을 키울 때와는 또 다르게 어린 생명이 애틋하고 소중했을 것이다. 자식들 키우면서 터득한 지혜와 사랑을 듬뿍 쏟아 부으며 지극정성으로 돌봤을 것이다. 그것이 자손번식에 유리하니 유전자에 입력돼 여성들에게 대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사람의 생태와 유사한 범고래의 생태 역시 할머니 가설을 증명한다. 미국 고래연구센터에서 36년간 추적 관찰한 바로는 40대까지 출산을 하고 이후에는 폐경이 와서 생식능력을 잃는다. 대신 자손을 돌보고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는 지혜로 무리의 번성을 도모한다. 언제 어느 곳으로 가야 먹이가 있는지, 이동 중에 만나는 바다 물길을 피하거나 이용하는 방법과 포식자를 피하거나 물리치는 방법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존의 방법이다. 고래연구소에서 살펴본 바로는 범고래의 먹이인 왕연어의 개체수가 줄어들수록 무리를 이끄는 할머니 범고래를 더 자주 목격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도 범고래도 오랜 삶의 경험이 축적돼 상황에 맞는 판단으로 생존에 도움을 받는다. 노산의 위험을 포기하고 자손을 돌보고 잘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유전자를 대대로 이어가 자손을 번성하게 하는데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기에 폐경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본다. 풍족하고 평화로운 시기보다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할머니의 지혜는 빛이 난다.

 ‘할머니 가설’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하는 인류의 보물임에 틀림이 없다. 딸의 딸, 즉 외손녀를 키워주고 있는 한 보살님이 딸이 책에서 보고 인터넷으로 들은 육아 지식을 들먹이며 친정 엄마의 육아 방법을 지적한다고 해서 나눈 이야기다. 비과학적이고 무지한 할머니로 낙인찍혀서 서럽다는 그 보살님에게 속성으로는 절대 쌓을 수 없는 삶의 경험을 가진 연륜에게 가치를 부여하자고 위로했다.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힘들었던 한 해가 저물며 새해가 다가온다. 묵은 것은 새 시대에 맞지 않고 효율성 면에서도 비경제적이라고 곧잘 배척한다. 과학의 발달이 사람의 직관을 눌러서 대세가 된 세상이다. 오랜 세월에 녹아나오고 쌓여진 경험은 고리타분하고, 늙은이 아집이라고 무시당하기도 한다. 다 좋을 수는 없어도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축적한 삶의 연륜은 나름대로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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