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숙한 시간 – 공생共生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5-02 / 조회 : 9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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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제목)

엄숙한 시간 공생共生

 

(중간제목)

너와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 한장의 가치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면을 모두 통합한것

 

(본문)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울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한밤중에 어디선가 웃고 있는 사람은,

한밤중에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두고 웃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가고 있는 사람은,

까닭 없이 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는 사람은,

까닭 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응시하고 있다.

 

독일 시인 릴케가 쓴 시 엄숙한 시간이다. 이 세상에서 혼자인 줄 알았는데,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울고, 웃고 또 나를 향해 걸어온다. 심지어 어디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엄숙한 시간이다. 인생은 함부로 예단할 수가 없다. 세상의 삶은 혼자가 아니다. ‘엄숙이라는 말로 가벼움을 떠나 생을 진지하고 겸허하게 바라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웅변한다. 무관한 사람끼리 운명처럼 뒤얽혀 있는 두렵고도 신비한 생명체의 비밀들을 익히게 된다.

우리는 2년여 코로나19를 겪으며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기침 하나가 내 일상의 생활을 뒤집어 놓은 상황도 겪었다. 누구나 쓰고 다니는 똑같은 마스크 한 장에서도 나와 남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각과 생각을 얻게 되었다.

간단한 의미 같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사고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쓴다라는 사적 또는 이기적이거나, “남들을 위해서 쓴다는 공적 또는 이타적으로 밖에는 생각할 줄 몰랐다.

오늘날 같은 경쟁 사회에서는 에게 득이 되는 것은 에게는 이 되고, ‘에게 득이 되는 것은 에게는 가 되는 대립 관계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적 배제의 논리가 지배해 왔던 까닭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코로나 19로 우리는 마스크의 본질과 그 기능이 그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면을 모두 통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해서 쓰는 마스크라는 공생관계는 지금까지 생명의 진화를 먹고 먹히는 포식 관계에서 남을 착취하는 기생 관계로 해석해 왔던 편견에서 벗어 날 수 있게 한 것이다. 마스크의 기능과 본질이 공과 사, 나와 남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선 의미를 가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같은 속담들이 있다. 요즘 세상에서 말하는 윈윈 전략이라는 말도 있다.

나를 위해 쓰는 마스크는 곧 남을 위해 쓰는 마스크는 대승불교의 근본인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정신이며,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기 자신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로 대승의 보살이 닦는 수행 태도이다. 자타불이를 알아야 보살이 되고, 나와 남이 하나라는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의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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