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지진의 현장에서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1-28 / 조회 : 9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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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나 사고는 우리에게 삶의 단면을 뚝 잘라서 보여주는 충격이 있다. 일상이라는 타성에 젖어서 이어져온 삶의 흐름이 갑자기 낭떠러지를 만나 곤두박질치는 충격인데, 이때 관성으로 뭉쳐진 ‘흐름’이 깨어지면서 삶은 그 단면을 드러낸다.
  우리가 인생을 장식하느라 겹겹이 쌓아 오던 온갖 것들, 부와 지위와 명예, 하다못해 외모… 이런 부차적인 것들을 다 벗겨내고 인생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남는 것은 간단하다. ‘내가 죽는구나’하는 순간 떠오르는 대상, 그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는 분명해진다.
  진정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으며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번 청계사 신도들과 가졌던 대만 성지순례는 그래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산 교육장이 됐다. 바로 3월 31일, 5명이 사망하고 2백 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만 지진의 지앙지인 화련(花蓮)의 동해안 쪽에서 우리는 지진의 여파로 커다란 바위가 굴러내려 덮치는 산사태를 직접 목격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성 재해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믿음이 아니라면 그것은 용기일 것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탄다는 행위는 비행기가 사고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 것이고, 고층건물에 올라가는 것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식들의 대학교육 적금을 들고, 은퇴 연금을 들고, 큰 집을 사고…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녹초가 되도록 일해 투자하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미 지난 1999년 진도 7.6의 강진이 발생해 2천3백여명이 숨지고 가옥 4만여채가 파괴되는 등 대규모 재해를 격은 대만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런 믿음에 금이 가고, 안정성과 미래에 대해 의심이 생기고 사회는 거대한 불안의 늪으로 바뀌게 된다. 마음속에 의심이 들어차니 삶이 주던 많은 즐거움들이 빛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때 고통을 삶의 공부 재료로 삼은 사람은 비로소 삶의 본질에 대한 진솔한 의문이 생기고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지 생각하게 되고 또한 분명해 진다. 삶과 죽음이 늘 찰나속에 공존해 있고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무상의 가르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길거리에 놓인 돌부리가 언제나 걸려 넘어져야 하는 걸림돌은 아니다. 쓰기에 따라서 충분히 디디고 더 멀리 뛰게 하는 디딤돌이 된다. 죽음 재앙 등 삶과 공존해 손바닥의 양면처럼 버티고 있는 원치않는 것들조차도 진정한 삶의 가치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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