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반의 참 뜻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0-01-28 / 조회 : 9093
  • 첨부파일 :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어떻게 죽는가 생각하기 전에 
        어떻게 잘 살지 고민해야”

  청계사가 상조회 개념의 ‘열반회’를 결성했다. 여러 도반들의 운기와 동체대비심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적정의 그 깊은 참 뜻을 되새길 수 있도록 준비하자는 수행의 자세로 출발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고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당사자이건 가족의 입장에서든 죽음에 대해서는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삶이 소중한만큼 죽음에 대해서 불교적인 시각은 어떠했을까 짚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은 오른쪽 옆으로 누워서 열반에 드셨다. 그러나 스님들은 결가부좌를 한 채 입적하거나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입적하거나 물구나무선 채 입적하는 등 죽음이란 마지막을 특이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세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스님들의 육신불이나 열반상 등이 그것이다.
  9세기 중국 당나라때 보화(普化)스님은 평소 방울을 흔들고 다니며 마을마다 가르침을 펴고 다녔는데 그의 입적 또한 특이하다. 그는 먼저 자신의 관을 만들고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내일 동문 밖에서 죽겠다.”고 선전했다. 다음날 사람들이 동문 밖으로 모여들었으나 그는 아직 청조(靑鳥)가 오지 않았다며 내일 남문 밖에서 죽을 것이라며 죽음을 연기했다.
  그 다음날은 다시 서문, 또 그 다음날은 북문 식으로 연기를 하니 북문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자 마침내 스님은 방울을 한참 동안 흔들고 관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뚜껑을 닫은 다음 입적했다.
  중국에서 조동종을 개창한 동산양개(東山良介)스님은 죽음의 문지방을 두 번이나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어느 날 삭발 목욕 후 가사장삼을 갖추어 입고 대중들을 모아 법문을 한 뒤 작별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에서 열반에 들었다. 물론 결가부좌의 자세로…
  청계사에서 출가한 근대 한국 선종의 중흥조 경허스님의 뛰어난 제자 ‘세 달(月)’가운데 한 분인 수월스님은 개울가 바위 위에 단정히 결가부좌한 채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입던 옷 한 벌을 곱게 접어 짚신 한 켤레와 함께 머리에 이고 열반에 들었다.
  16세기의 명기 황진이의 유언도 멋있다. “내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동문밖 길가에 버려 개미와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게 해 천하 여인들로 하여 경계케 하라.”
  살았을 때의 그녀가 멋지게 보인 것은 이미 깨우친 것 같은 무상의 도 때문도 있어 보인다.
  시체를 먼저 새나 벌레의 먹이가 되게 하는 것은 티벳이나 라마교 국가에서 행해지는 조장, 또는 풍장에서 볼 수 있다. 티벳 조장의 경우 사람의 흔적을 깡그리 없애는 데 특징이 있다.
  높은 산, 독수리들이 시신의 살점을 뜯어 먹은 다음 남은 뼈는 망치로 잘게 부수어 릴가루를 섞어 반죽하고 그 반죽 덩어리를 다시 독수리에게 던져 주어 뼈까지 먹게 만든다. 삶이 무상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질없고 패배주의적으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만큼 최선을 다해서 풍요롭게 살라는 뜻이다. 어떻게 죽는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떻게 잘 살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위로